이번 주는 빌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 책을 읽고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 보내드립니다. 이 책은 95년 닷컴 시대의 초입에 빌게이츠가 발행한 책으로, 향후 10년~20년의 미래를 예측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미래를 아는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의 예측은 닷컴 시대부터 모바일 시대까지 얼추 다 맞았는데요.
종현님의 코멘트를 보고,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가 이번에 도서관에서 발견해 큰 기대감을 안고 읽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
책을 읽고 미래를 보다 해상도 높게 바라보기 위한 여러 단서들을 얻을 수 있었고, AI와 MR을 통해서 진정으로 구축될 정보 고속도로(미래)에 대한 상상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는 그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힌트
빌게이츠는 376p 분량의 긴 호흡으로 10년/20년 뒤 미래를 예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과 미래를 예측할 때 사용하는 논리를 들여다보며 여러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힌트는 크게 다음 4가지이다.
과거의 패턴에서 힌트를 찾아라.
빌게이츠는 과거의 패턴에서 정보화 사회를 바라볼 힌트를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이전 혁명이었던 PC 혁명부터 TV/통신 혁명, 전기/가전제품 혁명, 구텐베르크 활자 혁명, 산업혁명까지 수많은 기술 혁명을 미래 분석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가까운 혁명일수록 그 전개 양상에 관한 힌트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 같고 (시대 및 소비자의 특성이 유사해서) 시대적으로 먼 혁명일수록 전개 양상보다는 혁명의 특성과 그것이 인류의 삶을 바꾼 방향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현 시점에서 시기적으로 가까운 혁명
PC 혁명은 1995년 기준(책의 시점) 가장 가까운 기술 혁명이기 때문에 전개 양상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Killer Application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지에 관한 힌트를 보다 얻을 수 있다. 사례를 살펴보자.
나는 1970년대에 워드프로세서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기업체 사무실에 보급시켰다고 언급했다. 처음에는 문서편집을 전문으로하는 왕 워드프로세서가 그 시장을 석권했다.
몇년 뒤에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했다. 개인용 컴퓨터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랐다. PC 사용자는 워드스타를 쓰다가 곧바로 비지캘크 같은 스프레드시트용 프로그램, 디베이스 같은 데이터베이스 관리용 프로그램을 쓸 수 있었다. 워드스타, 비지캘크,디베이스를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용 컴퓨터를 사게 하는 구매 동기가 되고도 남았다. 그 프로그램들이 바로 킬러 애프였다.
컴퓨터라는 기술이 End-User에게 구매 동기를 유발하는 요소는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DB 관리였고 이들은 모두 컴퓨터가 가진 장점(계산 역량)으로 기존 소비자들이 사용하던 대안(수기, 타자기, 워드프로세서)을 더 나은 발상으로 대체하는 제품이었다.
여기서 2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killer Application을 찾기 위해서는 그것이 실제 End-User에게 강력한 가치 제안을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Willing to Spend, 요즘 기술로는 Engagement를 측정할 수 있겠다)
Killer Application은 그 기술이 가진 장점으로 기존 대안을 대체하는 제품이다.
빌게이츠는 이 힌트를 바탕으로 인터넷 정보화 시대 Killer Application을 찾기 위해, 시간/공간적 제약 없이 정보망에 접속/생산/활용할 수 있는 정보통신 기술의 장점으로 기존 소비자들이 사용하던 대안을 대체하는 제품은 무엇일지 전 산업/생활 영역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당시 95년 시대에는 End-User에게 실제 가치 제안 및 구매 동기를 이끄는 제품이 없었기에 현재는 아직 Killer Application이 등장하지 않았고, 혁명의 극 초입일 뿐이라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모두 PC 시대 최전선에서 직접 플레이어로서 겪어본 교훈 덕분일 것이다.
또 책에서는 IBM의 실패 사례와 윈도우가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당시 기술적, 시대적 상황 및 전개 양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빌게이츠는 자신이 플레이어로서 파도의 선두를 잡았던 이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의 전개 과정에 대한 많은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특정 기술이 예측보다 발전이 느린 이유, 기술에 표준이 잡히는 과정, 인프라와 컨텐츠가 발전하는 과정에 관한 디테일한 직감을 이곳에서 얻었을 것이다.)
다시, 현 시점에서 시기적으로 가까운 기술 혁명일수록 전개 양상에 관한 힌트를 보다 잘 얻을 수 있다. 이는 소비자의 특성과 시대 상황이 비교적 유사하기 때문일텐데, 2023년 현시점에서는 2007년 시작된 모바일 파도 및 코로나 때 전성기를 누린 클라우드 + B2B SaaS 파도에서 향후 AI+MR 시대의 전개 양상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 있겠다.
현 시점에서 시기적으로 먼 혁명
현 시점에서 시기적으로 먼 혁명도 중요하다. 심지어, 역사적 기록만으로 얕게 그 혁명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오래된 혁명(인쇄혁명, 산업혁명)까지도 말이다.
이유는 뭘까? 기술이 인간의 삶과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와 그 방향성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빌게이츠가 말하듯, 기술 혁명에 관한 시선은 기술의 하부구조보다도 응용물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기술 혁명이 인간(소비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나갔는지에 관한 단서를 얻는 것은 응용물에 관한 상상을 보다 생생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시 사례를 살펴보자.
대량생산방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모든 제품이 일일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노동집악적인 그 방식은 생산성이 낮았고, 따라서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끌어올리지 못했다. 제봉틀이 등장하기 전에는 셔츠를 바늘과 실을 써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셔츠의 값은 비쌌다. 그래서 일반인은 몇벌 안되는 셔츠로 평생을 버텨야 했다.
1860년대부터 의복을 만드는 데 대량생산방식이 도입되었다. 기계들은 똑같은 셔츠를 무더기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연히 옷값이 떨어졌고 가난한 노동자도 부담없이 셔츠를 사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산업 혁명에서는 ‘대량생산방식과 같이 생산성의 향상을 이끄는 기술은 기존에 하던 일을 쉽게 만들어 비용을 줄이고, 다른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생활수준을 끌어올린다.)’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이는 컴퓨터라는 지식 노동의 생산성 향상을 이끈 기술이 어떤 영향을 줄지 상상하는데 도움을 주고(당시 빌게이츠가 힌트를 얻은 지점), 현 시점에서 AI(마치 과거 상상했던 컴퓨터의 진정한 End-Goal을 보는 것과 같은 기술인)가 지식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해 인간의 삶과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상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람들이 글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봇물처럼 쏟아진 책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문턱을 낮춰준 것이 바로 인쇄기다.
정보의 유통에서 마찰을 줄이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돈이 쓸데없이 유통비로 전용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작가에게 더 큰 힘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면서 최초의 진정한 정보유통혁신이 이루어졌다. 인쇄기 덕분에 어떤 주제의 정보든지 싸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쇄기는 마찰계수가 낮은 복제물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대중매체를 만들었다.
인쇄 혁명에서는 인쇄 기술이 복제물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비용을 줄여) 어떤 주제의 정보든지 싸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양한 매체와 일반인들 삶의 변화(글을 읽게 되고, 세상이 넓어지고)가 이루어졌음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정보의 유통에서 마찰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본질(상수)을 배울 수 있다. 새롭게 발명되는 기술들은 정보의 유통에서 마찰을 더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다시 말해 본질을 더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기존 대안을 대체했다.
활자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있던 구전보다 정보 유통 관점에서 더 나은 발상이었고, 인쇄는 생산의 시간적 경제적 비용에 제약이 있던 활자보다 더 나은 발상이었으며, PC, 인터넷 역시 정보의 유통에서 마찰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기존보다 더 나은 발상이었다.
1878년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사를 설립한 뒤 그는 전기를 팔려면 먼저 스위치만 한번 누르면 밤이고 낮이고 집안을 밝혀주는 전기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다.
전기는 조명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대부분의 가정에 뿌리내렸지만, 얼마 안 가서 수많은 응용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버사는 초기의 전기청소기를 개량해서 내놓았다. 전기 조리기구도 대중화되었다. 전기 히터, 토스터, 냉장고, 식기세척기, 다리미, 전기 공구, 헤어드라이어, 그밖에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각종 가전품이 발명되었다. 전기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었다.
전기 혁명에서는 인프라를 대중에게 깔기 위해서는 핵심 가치를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필수적임을 배울 수 있고,(그리고 그것이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며, 매우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도)
인프라가 깔리면 그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응용물이 등장해 보다 폭발적으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킴을 배울 수 있다.
더 나은 발상으로 대체하기 위해 본질과 제약 조건을 찾아라.
책을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내가 매번 외치는 변수와 상수를 잘 하기 위한 실천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단서는 다음과 같다.
내러티브 + 인터페이스의 정의로 더 나은 발상을 재정의해라.
본질과 제약조건을 찾아라.
내러티브 + 인터페이스의 정의로 더 나은 발상을 재정의해라.
우선 더 나은 발상을 정의한다는 것은 ‘미래 응용물에 관한 내러티브 + 인터페이스’를 정의한다는 말과 같다. 빌게이츠가 미래를 이렇게 정의하는데, 정보고속도로라는 미래 응용물에 관한 내러티브 (언제 어디서나 정보망에 접근해 활용할 수 있는 세상)와 이를 End-User가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PC 지갑 == 스마트폰)를 중심으로 향후 10년/20년의 미래를 예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내러티브 + 인터페이스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빌게이츠가 정보고속도로를 내러티브로 PC 지갑을 인터페이스로 정의해 미래를 효과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비결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러티브는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에 관해 가지고 있는 (그래서 Hype이 생기는) 내러티브를 사용하면 된다. 빌게이츠가 사용하고 있는 정보고속도로는 빌게이츠만의 개념이 아니고 95년 당시 미국에서 대부분 쓰고 있던 Hype 용어였다. 좀 더 시간이 흘러서는 유비쿼터스라는 용어도 있겠다. 모두 PC + 통신 인프라 + 인터넷의 발전이 한 곳에 모여 언제 어디서나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대를 꿈꿨다는 점에서 같은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내러티브라는 것은 모두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End-Goal이다. 그래서 이는 어렵지 않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Why AI Will Save the World Marc Andreessen과 같은 내러티브를 활용할 수 있겠다.
인터페이스는 이보다 어려워 보인다. 특히 빌게이츠가 95년 당시 PC 지갑이라는 현 스마트폰과 매우 유사한 하드웨어의 출현을 예측한 것을 보면, 인터페이스 예측은 미래의 최전선에 있는 업계 거물만이 할 수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빌게이츠가 PC 지갑을 예측한 것은 천재(or 거장)의 압도적인 인사이트에서 기반한 것이 아니라 1)미래 내러티브를 실현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인터페이스는 무엇일까?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2)인터페이스를 통해 미래 기술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에 관한 상상에 기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빌게이츠의 말을 들어보자.
조작이 간편한 정보가전품은 정보고속도로의 이용에 없어서는 안될 기본요소다. 앞으로 몇년 안에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통신속도를 지닌 디지털 장치가 속속 등장할 것이다. 우선은 PC 모양의 다양한 가전품이 정보고속도로에서 우리를 타인이나 혹은 정보와 연결시켜주리라는 것만 알아두기로 하자. 어떤 형태가 보편화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프로그래밍이 가능하고 정보고속도로에 접속할 수 있는 범용 컴퓨터일거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지금은 컴퓨터 중에서 노트북이 가장 들고 다니기 편리하지만 머지않아 PC 지갑이 등장할 것이다. 사진 한 장 크기의 컬러 스크린이 달려 있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의 PC 지갑을 오늘날의 지갑처럼 누구나 갖고 다니게 될 것이다. 당신이 주머니에서 컴퓨터를 꺼내도 아무도 신기해하지 않을 것이다.
PC 지갑이라고 불리는 정보가전품에다 당신은 이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집어넣을 수 있다. PC 지갑은 메시지와 스케줄을 알려주고 길안내를 하며 전자우편이나 팩스를 보내고 날씨와 주식에 관한 정보를 주고 복잡한 게임까지 즐기게 해줄 것이다. 회의석상에서 당신은 여기에 메모를 할 수도 있고 약속을 확인할 수도 있으며 심심하면 이것저것 정보를 훑어볼 수도 있고 수천 장의 아이 사진 중에서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띄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PC 지갑에는 현금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결코 분실되는 법이 없는 디지털 화폐가 들어 있을 것이다. 돈이 반드시 종이의 형태로 표현되라는 법은 없다. 크레디트 카드 지불과 외환시장거래는 디지털 정보로 표시된 돈을 주곱다는 행위다.
얼핏 들으면 정말 신기가 있어 보이는 이 예측도 분해해보면 그 당시 우리도 할 수 있었던 지극히 과학적인 판단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정의한 내러티브인 정보고속도로가 활성화 되는 세상이 오려면, 그 당시보다 조작이 쉽고, 휴대가 편리한 컴퓨터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물론, 당시 컴퓨터 인터페이스만으로도 WWW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이는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게 깔린 WWW 인프라와 기술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적합한 인터페이스가 아니었다. 적합한 인터페이스는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는 작은 컴퓨터야 했다. 당시 컴퓨터는 계속 싸지고, 작아지고, 성능이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작아진 새로운 컴퓨터의 출현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현실의 땅을 딛고 보자면, 노트북이 지금 제일 작은 컴퓨터이니 지갑 정도까지 작아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95년 당시 사람들이 지갑에 돈과 명함, 사진을 포함한 필수적인 정보/물건들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갑이 컴퓨터가 되고 WWW에 연결된다면 이러한 모든 정보들을 데이터화해서 컴퓨터 능력과 정보고속도로를 활용해 삶의 많은 것들을 바꿀 것임을 상상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빌게이츠가 PC 지갑을 예측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응용물이 극대화된 모습이 우리가 꿈꾸는 내러티브이다. 하지만 기술 응용물의 극대화는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새로운 기술이 일반 대중들에게 까지 응용이 되고 삶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려면 그 기술의 잠재력을 전부 끌어올릴 수 있는 적합한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빌게이츠가 PC 지갑을 예측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최전선 기업의 CEO여서 다른 사람 대비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과소평가했던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을 전부 끌어올릴 수 있는 적합한 인터페이스(하드웨어 or 입력물)가 중요함을 인지하고 깊이 있게 고민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AI가 가져올 지식 노동의 산업혁명 시대라는 내러티브를 실현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인터페이스는 무엇일까?에 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짧게 생각을 전개해보자면,
AI는 멀티모달을 가능하게 한다. 자연어만으로도 컴퓨터의 역량을 끌어낼 수 있다. 이 2가지 특성은 디스플레이가 아닌 현실 세상에서 디지털(컴퓨터 역량 + 전세계 통신망)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컴퓨터,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기반 키보드 or 터치 인터페이스는 새로운 세상에게 적합한가? 아니다.
AI 시대가 가져올 잠재력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애플의 비전프로, 메타의 스마트 글라스 같은 MR 인터페이스가 더욱 적합한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뭘까?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 세상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는 빌게이츠가 95년 당시 꿈꿨던 세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디스플레이에 한정해서 이러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인간은 본래 디스플레이에 한정된 사용 방식 or 의사소통 방식보다 어떠한 제약 조건도 없이 눈,손,몸이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사용을 더 편리하다고 느끼는 생명체이다.
AI 시대는 이런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는 SW이다. 다시 말해, 디지털 세상을 인간이 보다 자연스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더 나은 발상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그 기술을 여전히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컴퓨터 인터페이스로 사용할까? 아니라고 본다. 디지털이 현실에 삽입되어 더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더 나은 인터페이스인 MR이 새로운 기술의 내러티브를 충족시켜줄 적절한 인터페이스로 출현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정보고속도로 세상에서 PC 지갑이 필수 조건이었던 것처럼.
본질과 제약조건을 찾아라.
빌게이츠는 미래를 예측할 때 특정 산업의 본질과 제약 조건에 관한 높은 이해도를 보여준다. 마치 그 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것처럼, 현 산업에서 통상적으로 행해지는 전략과 제품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기술의 한계로 그렇게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제약 조건은 무엇인지에 관해 공부하고 이를 예측에 활용한다. 특히 제약 조건에 관해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준 것이 놀라웠는데, 빌게이츠는 그 이해도로 인해 기존의 제약 조건을 해결하고 본질을 더 잘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방향으로서 미래를 상상해 예측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사례를 살펴보자.
애덤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에서 시장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모든 구매자가 모든 판매가격을 알고 있고 모든 판매자가 모든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을 알고 있다면, ‘시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완전한 정보를 기초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따라서 사회의 자원은 효율적으로 분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우리는 스미스가 말한 이상적인 시장을 이룩하지 못했다.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이 서로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얻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통해 이상적인 시장의 본질이’모든 구매자가 모든 판매가격을 알고 있고 모든 판매자가 모든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을 알고 있는 시장’임을 배울 수 있다.
자동차 스테레오를 사려는 소비자는 대부분 모든 판매점을 자세히 조사하고 다닐만한 시간이나 인내심이 없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어떤 물건을 40만원 주고 샀는데 한두 주일 뒤에 25만원이라고 적힌 신문광고를 보면 당신은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치렀다는 사실에 울화통이 치밀 것이다.
정보고속도로는 전자망을 이용한 시장을 확대시켜 이것을 궁극적인 거간꾼 보편적인 중개인으로 만들 것이다. 물건을 실제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만이 거래에 관여하고 중간에서 소개료를 받는 사람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기존의 시장은 모든 제품에 대한 정보와 판매자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직접 발로 전국 판매점을 자세히 조사했어야 했기 때문에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유통업자에게 속고 손해보는 일이 발생했다. 정보고속도로는 제조업체, 경쟁사 업체, 구매한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정보고속도로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활용한 유통상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의료, 법률, 여행과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소비자가 손해보는 산업 전 영역(반대로 이로 인해 판매자는 차익을 얻는)에서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인터넷이 그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음을 예측하고 있는데, 오늘날 많은 니치한 영역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려는 마켓플레이스들의 출현과 유사하다. 아직도, 디지털화가 되어있지 않은 막노동 시장, 토목 시장 등등에서는 비슷한 기회가 존재하겠지.
오늘날의 TV 광고는 겨냥하는 집단이 프로그램마다 다르다. 잡지는 좀더 주제를 정선하여 다룰 수 있고 또 실제 편집도 그런 방식으로 하므로 광고가 공략하려는 대상집단을 좀더 구체적으로 상정할 수 있다. 정보고속도로는 훨씬 세밀하게 소비자를 구분하여 각 분류군에 어울리는 광고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대상이 뚜렷한 광고는 광고주에게 더없이 유리하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광고만 보면서 TV를 시청할 수 있으므로 마음이 홀가분하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중간광고 시간이 되면, 남편이 기업의 중역으로 있는 중년부부는 퇴직자를 위한 전원주택 광고를 보게 되는 반면에 젊은 신혼부부는 가족이 오붓하게 휴가를 보낼 수 있는 휴양지 광고를 보게 될 것이다.
광고의 경우 광고주가 원하는 소비자 집단에게 접근할 수 있다면 광고 효율이 올라간다는 것이 본질이다. 기존의 TV광고와 잡지 광고는 타겟할 수 있는 소비자 집단이 덜 구체적이었으나, 정보고속도로라는 새로운 기술은 그 기술의 특성으로 훨씬 세밀하게 소비자 집단 구분이 가능하며 성과 측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또 정보고속도로의 특성으로 인해, 대상마다 다른 개인화된 광고를 운영할 수 있게 됨을 예측하고 있다.
방송국의 수가 서너 개에서 스물네 개, 또는 서른여섯 개로 늘어나면서 방송에 변화가 왔다. 만일 당신이 30번 채널을 운영한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1번에서 29번까지의 다른 채널을 모방만 해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제작비와 제한된 채널로 인해 아직도 우리가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선택폭은 그리 넓지 못한 편이다.
방송국의 경우 TV 채널이 1~4개 정도 수준에서 30개 정도로 늘어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폭이 넓어졌고, 공급자 입장에서는 조금 더 니치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30개로도 소비자의 세밀한 특성에 맞는 개인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없다. 정보고속도로는 무한한 채널을 운영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그 밖에
앞에서 빌게이츠가 미래를 바라보는 근거에서 핵심적인 단서들을 정리해보았다. 그 밖에도 성공보다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비용의 변화는 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이로 인해 신기술에서의 비용 변화에 관한 깊이 있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세상들은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이 아니라 모두 도구의 발전으로 발전해온 방향이라는 것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더 나은 발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것 등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빌게이츠의 대부분의 논리는 비용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현 시대 AI와 MR 기반 기술, 응용 기술에서의 비용 변화를 기민하게 추적해야겠다. 또 평소 과거의 패턴을 분석할 때 성공한 기업가와 회사 위주로 찾아보는 경향이 강했는데, 다양한 신경망을 구축하는 관점과 빌게이츠가 말한 실패에서 배우는 관점에서 실패 사례를 찾아보는 비중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상 깊었던 문구 몇 가지만 제시한다.
이제까지의 상식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어제의 상식은 어제의 시장에서만 통용된다. 지난 30년 동안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시장은 확실히 기존의 시장과는 판이한 발전양상을 보여주었다.
한 때 천문학적인 매상을 올리고 수많은 고객을 거느리던 굴지의 기업들이 하루 아침에 자취를 감추었다. 애플, 컴팩, 로터스, 오러클 ,선 ,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무일푼에서 출발한 신생기업들이 눈깜박할 사이에 수십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나는 이 젊은 기업들의 성공이 부분적으로는 내가 ‘상승나선곡선’이라고 부르는 요소에 의해 촉진되었다고 본다.
나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결국 미래를 낙관하고 잘 되리라 믿는다. 그것은 원래 낙천적인 나의 천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컴퓨터와 함께 자라온 우리 세대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들이 새로운 길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유용한 도구를 제공할 것이다. 나는 역사는 진보하게 마련이며 우리는 그 진보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앞으로의 이야기
지금까지, 빌게이츠가 미래를 예측하는 논리에서 내가 적용할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을 정리해보았다. 글의 마지막은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짧게 예측하며 마치고자 한다.
아직 빌게이츠가 말한 미래는 끝나지 않았다. 정보고속도로는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현 시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컴퓨터를 활용해 정보를 얻고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컴퓨터는 몇 몇의 프로그래머들을 제외하고 그 기술의 생산성을 100%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하던 것을 멈추고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때문에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를 넘어가며 작업을 할 때 많은 불편함이 있다. 또 온라인 환경이 디스플레이에서 한정돼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서로 소통하는 것만큼의 소통이 온라인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모든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디지털이 현실에 삽입되어 정보고속도로를 활용하는 것이 오프라인에서의 경험 수준으로 제약조건이 없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많은 협업과 더 몰입감 있는 컨텐츠 경험 더 많은 정보 활용을 정보고속도로에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자연어로 컴퓨터의 생산성을 극대화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종이 문서를 디지털 문서로 바꾸는 일, 나의 문제를 컴퓨터로 전산화하고 해결하는 일은 정보고속도로 세상에서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는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들에서만 이것이 가능하다. AI는 멀티모달을 진정으로 가능하게 하여, 다시 말해 자연어/몸짓으로 컴퓨터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이를 해결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산업 혁명 시대와 같이 지식 노동의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미래는 멀티모달(디지털이 현실의 삽입)과 지식 노동에서의 산업 혁명(생산성 향상) 이 2가지가 현시점 깔린 정보고속도로 인프라 위에서 그 영향력을 강화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 내러티브에 적합한 디지털이 현실에 삽입되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도 출현해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애플 Vision Pro, 메타 Smart Glasses같은 MR 기기들이 인터페이스의 첫 단추를 꽤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현 시점에서 기술은 빈약하기 짝이 없고 많은 제약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은 끊임없이 엄청난 속도로 진보한다. 세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진보한다.
빌게이츠가 1995년 인터넷 시대를 예측하며, 90년대 말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잡히고, 그 후 10년 안에는 정보고속도로가 우리 삶에 침투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 당시 인터넷 시장은 아무런 실제 가치를 내지 못하는 지금 AI 시장보다 허허벌판인 시장이었다. 끔찍한 UX와 할 수 있는 컨텐츠가 전무한 그런 엉망인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발명품은 빌게이츠의 말대로 10~15년만에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기술이 되었다.
MR과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향후 10년 뒤인 2033년은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뀐 세상이 올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컴퓨터를 숨 쉬듯이 사용하는 것처럼 AI를 숨 쉬듯이 사용하고, 스마트폰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터넷을 언제 어디서나 사용하는 것처럼 MR 인터페이스를 통해 디지털을 현실로 불러와 언제 어디서나 또 많은 사람과 함께 활용하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
다시 미래는 멀티모달(디지털이 현실의 삽입)과 지식 노동에서의 산업 혁명(생산성 향상) 2가지이다.
그리고 이 미래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미래에는 가능해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사람들의 꿈을 키워줄까?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여정을 꿈꾸며, 빌게이츠의 한마디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우리 모두 열심히 미래를 굴려보자.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가.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수많은 일들이 엄청난 가능성으로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다. 새로운 기업을 세우고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의학 같은 과학을 발전시키고 친구나 아는 사람과 늘 연락을 가지는 것이 지금처럼 편리한 시절도 없었다. 소수의 전문기술자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방향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과학기술이 가져올 장점과 단점을 폭넓게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공은 독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나의 낙관론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여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건설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와 이 책을 읽으시다니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