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한국 IT 스타트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코스피 시가총액 TOP10 기업 중 유일하게 자수성가한 기업입니다. 그만큼 IT와 스타트업을 꿈꾸는 저에게 정말 특별한 기업인데요.
오늘은 이 네이버의 과거, 그 중에서도 설립 후 초기 10년과 이해진 회장에 대해 다룹니다. 과거 뉴스와 인터뷰 자료를 중심으로, 역사 속 패턴을 찾고 그 속에서 생각과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2023년 현재 네이버와 이해진 회장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네이버는 명실상부한 대기업이다. 현재 기준, 시가총액 35조로 코스피 TOP10에 올라가 있고, 국내를 넘어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해진 회장은 이 해외 진출 영역에서 글로벌투자책임자(GIO)로 활약하며, 네이버가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 있다. 특히 네이버웹툰을 중심으로, 글로벌 콘텐츠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 중이다.
아래는 이해진 회장의 경력.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1999년 삼성SDS를 퇴사해 네이버컴을 설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01년 네이버컴과 한게임을 합병해 NHN로 회사이름을 바꾸고 공동대표이사 사장를 맡았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NHN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일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NHN 이사회 의장(CSO)을 지냈다.
2007년 NHN재팬 이사가 됐다.
2012년 NHN재팬 회장에 취임해 라인으로 회사이름을 바꿨다.
2013년 NHN에서 네이버로 회사이름을 바꾸고 이사회 의장으로 계속 일했다.
2017년 3월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맡았다.
2021년 3월 A홀딩스(소프트뱅크 합작사) 공동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위에 서술된 이해진 회장과 네이버의 초기 10년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과거 속으로 들어가보자. 특히 아래 사건들을 중점으로 말이다.
1999년 삼성SDS를 퇴사해 네이버컴을 설립
2001년 네이버와 한게임을 합병해 회사이름을 NHN으로 바꿈
2002년 네이버에 ‘지식iN' 서비스를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두고 그 해 NHN을 코스닥에 상장
인터뷰가 몇 없는 이해진 회장의 귀한 인터뷰. 2000년도, 네이버가 아직 포털 사이트 중 업계 5위 정도의 중위권일 때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래는 인상적이었던 문구들.
저희는 검색기능의 장점 때문에 사람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니까 좋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검색쪽에 더 확고하게 자리매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의 궁극적인 비전은 인터넷 미디어 컴퍼니가 되는 겁니다.
이 당시 네이버의 비전은 인터넷 미디어 컴퍼니였다.
네이버도 처음부터, 기술 중심의 미래를 꿈꾼게 아니라, 그 당시 야후처럼 미디어로의 미래 (야후가 망한 결정적 이유라고 평가받는)를 꿈꾸었다.
당시 시대 상황 상, 인터넷 기업의 End-Goal은 아마존이 보여준 전자상거래나, 야후가 보여준 미디어로의 진화 2가지였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을 자연스럽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술과 인터넷 시장의 발달은 그 당시 End-Goal 스냅샷을 완전히 바꿔버렸고, 추후 인터뷰로 미뤄 짐작하건데, 네이버는 미래 스냅샷을 예측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비전을 바꾸어나갔다.
여기서 배울 점은 아래와 같다.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단계에서 미래 예측은 의미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는 냉철한 현실 판단과 적절한 대처가 중요하다.’
이경전 : 다음은 이메일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들을 붙들어두는 면이 있습니다.
네이버는 어떻습니까. 고객을 붙들어놓을 만한 전략은 어떤 것입니까.
이해진 : 저희 브랜드의 가장 큰 약점이 어느 한분야도 명쾌하게 잡아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검색에는 야후라는 엄청난 브랜드가 있고 라이코스가 마케팅 물량으로 들어오고 있고, 이메일에는 다음이다 해서 카테고리마다 대표 브랜드들이 있는데 네이버는 지금 어느 곳에서도 일등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7월에 지능형 검색엔진이 나오면 다시 한번 검색이라는 분야에서, 저희가 가장 강했던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이 당시(2000년) 태어나지도 않았어서 상황을 잘 몰랐는데, 네이버가 초기부터 1등이었던게 아니었구나.
심지어 경쟁사 대비 명확한 경쟁력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구나.
이준호 교수의 서치솔루션 인수 이후, 지능형 검색엔진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한 이 말 이후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단기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식IN 서비스의 성공과 이 검색엔진의 합작으로 네이버의 강력한 한방이 된다.
어디서 어떻게 승부를 봐야할지, 정확히 알고있고 장기적으로 이를 실현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경전 : ‘제로마켓’을 보면 상인들에게 수수료를 안 받고 있는데 그럼 수익모델은 어떻게 됩니까.
이해진 : 요즘엔 수수료를 받아야 좋은 기업이란 대접을 받는 분위기지요.(웃음) 저희는 장터역할만 합니다. 그 많은 사용자의 거래정보는 우리에게 중요한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통계자료가 많이 제시될 겁니다.
예를 들면 제 경우인데 ‘30대 직장인이 어버이날 무얼 제일 많이 살까’ 하는 게 궁금한데 그런 자료가 나올 수 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히 민감하잖아요. 그런 체계화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향후에는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의 바탕을 만들 겁니다.
이 때 이해진 회장이 말했던, 고객 데이터 기반 CRM 시스템은 지금의 네이버 커머스를 만들었네
이 당시 이해진 회장은 몰랐겠지. 이렇게 구축한 고객 데이터와 Search Volume Trend 데이터가 대기업이 아니라, 정말 작은 개인사업자들에게 아이템 발굴 Tool로서 활용되고 커머스 시장을 활성화시킬 줄은.
하지만, Search Volume Trend 데이터가 중요한 커머스 데이터가 되고, 수수료를 안받음으로써 이를 장기적으로 축적할 구조를 만드는 의사결정은 결국 미래가 어떻게 변하든 간에, 상수로서 중요했던 판단이었다고 생각.
이경전 : 인터넷 비즈니스는 ‘프로비스’의 성격이 강하다고 합니다.
프로덕트와 서비스가 조화를 이룬다는 말인데 네이버는 어떻습니까.
이해진: 저희는 미디어가 타깃이기 때문에 서비스가 주축입니다. 국내에서는 서비스를 축으로 해외에서는 솔루션 수출에 치중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동남아시아에서 문의가 많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그동안 겪은 상황을 경험으로 솔루션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시, 계속 미디어를 이야기한다.
이 때부터 해외 진출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솔루션 수출이다. 닷컴 버블 당시 기업들을 뜯어보면, 초기에 현금흐름을 솔루션 외주로 많이 발생시키는데 (넥슨, 네오위즈 등) 이는 빠른 러닝커브로 인한 기술 해자를 가졌기 때문.
특히, 한국이 동남아, 아시아권 대비 인터넷 기술 해자를 가졌고 이 arbitrage를 활용해 솔루션 수출을 계획한 것은 당시에는 당연한 흐름처럼 보인다.
이경전 : 네이버는 사내벤처로 출발했는데 대기업들의 경우 사내벤처로 갈 것인가, 홀딩컴퍼니로 갈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젊은이들도 대기업에 가서 경험을 쌓고 사내벤처에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직접 벤처기업으로 갈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험자로서 조언 한마디 해주시죠.
이해진 : 많이 듣는 얘깁니다. 네이버는 좋은 모델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벤처로 시작했다면 지금보다는 먹고 살기 위한 사업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네이버가 사내벤처의 좋은 모델이라고 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벤처사장을 만나보면 커뮤니케이션에서 좀 어려운 점을 느낍니다.
이 때나 지금이나 커리어 초년기/대학생들의 고민은 비슷했구나.
아직도 대기업에가서 경험을 쌓을지 + 벤처기업으로 도전할지에 대한 고민을 우리 세대도 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도구가 어떻든 간에, ‘함께하는 사람들 + 나의 권한 이 2가지 팩터로 인한 성장 기울기 값의 최적화’가 중요한 것 같다.
당연히도, 이 2가지 팩터를 높은 값으로 올릴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이 때나 지금이나 Risk를 감수해야하고.
이경전 : 광고시장이 합리화되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이해진 : 지난해 초만 해도 인터넷 광고는 신문사 사이트에 제일 많았습니다.
인터넷 광고는 신문에서만 될 것이다 했는데 몇달 만에 다 역전되고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지요. 사실 지금까지는 말이 인터넷 광고지 구시대 광고시장과 같았습니다.
이제는 인터넷 업체들에 광고 많이 합니다. 아직은 브랜드에 많이 움직이긴 하지만 효과를 따지고 있습니다.
당시, 인터넷을 시장에서는 전세계에 올라가는 언론/컨텐츠 수용소 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초기에 이 인터넷과 무선 통신 흐름을 가장 빠르게 가져가는 곳 중 하나가 언론사였다.
모바일이 나오고, 기존 컴퓨터 게임을 그냥 그대로 모바일로 바꿔냈던 사례들이 대부분 실패했던 것처럼, 이 당시에도 언론에서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
단순 트래픽 많은 대중 접점 채널로만, 인터넷이 인식되었으니까, 모두들 광고비 태워서 트래픽 올리고 인지도 올리는데 집중했고, 채널로서의 가치 향상을 위해 브랜드가 중요했던 시기. (인터넷하면 야후, 이메일하면 다음)
그치만, 브랜드보다도 성과와 효과를 따지기 시작했다는 당시 흐름. 그 흐름을 네이버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광고주 입장에서 브랜드가 딸리더라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수요 몰집 시스템과, 성과 측정 시스템이 있었어야 했을 것.
(추후 통합 검색 + 광고가 여기서 key)전세계적으로는 이러한 흐름을 바꾼 키플레이어는 검색 광고 모델을 만든 오버추어일 것. 네이버는 오버추어 + 구글이 가져온 이 흐름을 한국에 잘 가져온 사례.
이해진:저도 집에서 하나로통신을 깔았는데 설치하는 사람이 인터넷 시작화면에 야후를 설정해놓더라구요. 초보자들에게는 야후를 보여줘야 인터넷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랍니다. 무서운 인식이었습니다. 무리한 맞짱은 피하자는 생각도 해봅니다. ‘고급 사용자는 네이버를 쓴다’는 것을 내세워야 할 것 같은데 고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나 어릴 때만 해도(초등학교 이전), 인터넷하면 야후였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야후의 브랜드가 무서웠다.
이 때 정면 돌파가 아니라, 후발주자 + 신생주자로서 카운터 포지셔닝을 할 생각을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듯. (역사를 살펴보면, 네이버는 결국 인터넷 친화도 높은 젊은 층들 중심으로 포지셔닝에 성공함)
이경전 : 기술 습득은 어떻게 하십니까.
이해진 : 학교에 있는 좋은 기술을 아웃소싱하고 있습니다.
학교 안에는 좋은 솔루션이 많거든요. 국내에서 히트친 상품들, 예컨대 퀴즈퀴즈나 윈클릭, 세이클럽 등은 사장이 이게 되겠다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학부생들이 아르바이트하면서 하지 말라는데 굳이 만들어낸 것들이 빛을 본 경우입니다. 학교에 있는 학생들 능력 정말 뛰어납니다. 학생들과의 채널 만드는 게 중요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Web3 + AI Service Layer 2가지 영역에서는 지금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
수요는 많아지는데, 공급은 극히 적고, 공급을 위한 기술을 새로 배워야하는 기존 전문성의 해자가 없어지는 시점에 (당시 인터넷 Service Layer도 그러했다.) 인턴 남세동과 같은 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 것.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 분야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날텐데,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물과 리소스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반대로 전문성 없는 20대 초반인 나에게는 이런 빠른 러닝커브가 해자인 영역에서 게임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NAVER 네이버를 말한다! - 1.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 기업의 시작
NAVER 네이버를 말한다! - 2.네이버 NAVER 회사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네이버 초기 멤버(10번째 입사자) 홍준(현 중고나라 대표)님의 네이버 초기 10년 회고글 시리즈. 이 시리즈를 읽고 나면, 위에서 언급한 2000년 브랜드 가치와 점유율이 부족해 고민하던 이해진 대표의 네이버가 어떻게 업계 1위로 발돋음할 수 있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아래는 인상적이었던 문구들.
현실적인 관점에서 네이버 회사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당시 네이버의 서비스 방향성과 실행의 결과들 중에는 참담한 실패로 기록된 것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네이버의 야심찬 오프라인 Big company들과의 온라인(인터넷) 비즈니스 교두보 확보를 위해 협력한 ‘마이비즈’가 그랬다.
오프라인 소비재 기업들 + 언론사들의 신규 마케팅 채널로서, 포털을 활용하는 수익모델은 그 당시에는 당연했던 것 + 당장 고객들이 가치를 느껴서 수익화할 수 있었던 부분.
여기서 시도하는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함. 하지만, 이 사실은 모두가 알고있었기 때문에, 마케팅 출혈전쟁 + 브랜드 가치에 의한 순위 결정이 이루어졌던 거고, 따라서 네이버가 경쟁력이 부족했던 거고.
당시 이러한 경험들은 네이버를 기술 솔루션 회사로 포지셔닝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실제 이해진님(당시 네이버컴 대표이사)은 1999-2000년 네이버 초기시절 비전을 [기술기반 검색엔진 솔루션 회사]로 명명하였다. 이에 따라서 수백, 수천만건의 웹 데이터 크롤링, 색인, 저장과 검색기술을 바탕으로 대기업 사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해주는 역할을 주력 사업으로 설정했다. 실제로 2-3개 대기업과 비슷한 계약을 맺거나 협의가 진행되었으나, 2000년 이후 초고소 통신망의 신속한 도입에 따라 인터넷 웹 데이터는 대기업 사내 데이터 수준을 수십-수백배 이상 뛰어넘게 되었고, 네이버는 자연스럽게 B to B 서비스가 아닌 B to C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로 포지셔닝 하게 되었다. 이해진님은 이를 계기로 [나는 격변하는 인터넷/IT 시장의 6개월 뒤를 예측할 수 없고, 예측하지도 않겠다. 현재 주어진 상황과 역할에서 기민하고 효과적인 실행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루어 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나는 격변하는 인터넷/IT 시장의 6개월 뒤를 예측할 수 없고, 예측하지도 않겠다. 현재 주어진 상황과 역할에서 기민하고 효과적인 실행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루어 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 기억하자. 빠른 실행력 바탕으로 현실 대처가 중요.
오버추어 서비스가 98년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99년에 상장했으니 이해진 회장은 오버추어를 알고있었으려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검색을 강화해, 장기적 검색 광고 모델로 판을 바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려나? 궁금하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알고 있었든/몰랐든 네이버는 단순 포털 미디어 광고 경쟁으로는 승부가 되지 않아 다른 영역에서의 핵심 경쟁력을 키워야한다고 판단해 검색 엔진을 키웠고, 시대의 변화에 반응해 B2B에서 B2C로 포지셔닝했으며, 이러한 빠른 대응이 미래 성공을 만들었다는 것은 변치 않는 상수라고 생각한다.
지금 세대에서도 똑같을 것. AI 시대 발전은 당시보다 훨씬 빠른데, 이 때 예측하는 것보다도, 빠른 실행력과 대응을 통해 고객 가치를 계속 빌딩하고 장기적 관점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NAVER 네이버를 말한다! - 3.네이버+한게임 = NHN의 탄생 막전막후!
왜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이 신의 한수였는지, 왜 필요했는지 당시 시대 상황에서 그 힌트가 담겨있다.
2000년 상반기 네이버컴 주식회사는 롤러코스터를 탄 격동의 시기였다. 1999년 11월 3일 한국기술투자(KTIC)에 20% 지분을 주고 100억원 투자유치를 성공했다. 당시 인터넷 분야 벤처기업 투자유치 사상 최대의 규모였다. 자금이 준비된 네이버는 2000년 상반기 TV CF 등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을 진행했다.
네이버 [사랑] CF - http://blog.naver.com/naver_diary/150073059072
사실 광고영상 자체의 완성도는 매우 높았다고 생각한다. 투자받은 자금의 절반에 가까운 40억을 TV CF에 쏟아부었지만, 네이버 브랜드 인지도 상승이나 서비스 활성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브랜드 가치가 중요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자 투자금의 40%를 TVC에 올인.
야후, 다음과 브랜드 가치 기반 인터넷 미디어 컴퍼니로 정면승부하는게, 미래를 아는 내가 봤을 때는 이상한 판단 같지만, 그 당시에는 필요했을 것.
장기적으로는 검색엔진 해자 바탕으로 검색 광고로 나아가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도, 당시 돈을 당장 벌 수 있는 방법 + 고객들에게 가치를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이 시대 흐름상 브랜드였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필요했을 거고 진행해야했을 것이다. 미래가 인터넷 미디어 컴퍼니가 아니라는 거에 100% 베팅할수도 없었을거고. 모두가 그렇다는데. 고객들이 그렇게 느낀다는데. 반기를 드는 것은 어려웠을 것.
이러한 공격적인 마케팅과 서비스 확장은 투자 유치금 100억원을 수개월만에 소진하게 만들었고, 결국 네이버컴 경영진은 2000년 3월 16일 새롬기술과의 합병을 결정한다.
실패후 남은 건, 자금(수익모델 확보) + 트래픽(TVC해도 안오르네)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했다는 것.
초기에는 인수 합병 당하는 것으로 풀고자 했으나,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무산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네이버에게 기회가 됨. 운의 영역이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이러한 부침을 겪은 뒤, 네이버컴 경영진은 구체적인 서비스 트래픽 확대와 수익모델 확보가 가능한 곳에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심을 했고, 당시 눈에 들어온 회사가 한게임이었다.
버블이 꺼지고 냉철하게 판단해, 두번째 해결책으로 찾은게 한게임.
본질로 돌아와, 필요한걸 단순하게 채웠다.
우리가 필요한건 자금(수익모델)+ 트래픽이잖아. 한게임이 다 가지고 있어. 그리고 한게임이 타겟하는 유저와 네이버가 타겟할 유저가 딱 맞아.(젊은이) 두가지 바탕으로 판을 다시 짜보자.
네이버, 한게임-원큐-서치솔루션 등 3개 업체 M&A 및 투자
당시, 해당 인수가 보도된 언론. 지금 생각해보면,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한게임은 앞에서 말한 자금+트래픽 모두를 해결해주었고, 서치솔루션은 네이버만의 경쟁력인 검색엔진을 강화시키며, 장기적으로 통합검색+검색광고로 인한 한판 뒤집기에 큰 기여를 한다.
인터넷 미디어와 솔루션, 전자상거래, 오프라인과의 제휴 등 4개의 비즈니스 축을 두루 갖춘 토털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서치솔루션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면, 검색엔진 최초로 ‘자연어 처리 검색’을 네이버에서 본격화하며, 국내 기준 압도적인 검색 해자를 만드는데 기여한 첫걸음이었다. 특히 당시 엠파스가 이준호 교수 바탕으로 자연어 처리 검색을 처음 선보이며, 검색 해자마저 경쟁사에게 뺏길 위험에서 인수를 통해 기회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더더욱 중요한 결정이었다. 아래 글들에서 해당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검색을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놓았고 검색엔진 기술과 검색결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검색엔진 기술을 내재화 하기 위해서 이해진님은 이준호님(현 NHN 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이끄는 검색엔진 기술회사 서치솔루션 인수를 주저하지 않았고, 해당 인수로 주식 지분율에서 이해진, 이준호 두 사람이 동등하게 네이버 개인 최대주주 수준으로 올라서는 것도 충분히 인정했다.
이후 2006년 6월에는 검색결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혹은 검색관련 좋은 개발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스노우 랭크라는 검색엔진 알고리즘을 개발했던 벤처회사 [첫눈]을 약 4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서치솔루션은 말이 기업 인수지, 사실상 이준호 교수 한명을 위한 투자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한명을 위해 주식을 자신과 동등하게 주면서까지 인수한 이해진 회장의 실행이 정말 놀랍다.
유비 멘탈리티가 이런 거 아닐까?
이후, 첫눈도 인수하며 검색 엔진에서의 해자를 끊임없이 발전시켰다.
NAVER 네이버를 말한다! - 4. 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 : 검색, 지식iN 그리고 통합검색과 검색광고
검색, 지식iN 그리고 통합검색과 검색광고. 나는 이 네가지가 네이버 성공의 핵심 키워드 라고 생각한다. 좀 더 풀어쓰자면..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님의 검색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인터넷을 꿰뚫는 방향성을 설정했고, 미국 Ask Jeeves와 국내 디비딕 서비스를 벤치마크한 지식iN 서비스가 정보 데이터 축적의 근간이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검색과 지식iN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한 통합검색의 도입은 네이버가 No.1 인터넷 서비스가 되는 신의 한 수 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용자 수와 트래픽을 바탕으로 매년 경이로운 매출성장을 보여준 검색광고가 네이버 성공신화를 완성한 것이다.
네이버 성공신화는 검색, 지식IN, 통합검색, 검색광고
검색은 쭉 얘기했고, 사실상 핵심이 지식IN이다.
오픈 초기 질문과 답변 DB가 많지 않았고, 한겨레 신문사의 디비딕 닷컴이 2년 빠른 2000년 10월에 오픈해서 이미 20만개 이상의 질문/답변 DB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활성화에 어려움이 많았다. 다만, 당시 여러가지 상황의 변화가 네이버 지식iN 서비스의 호재로 작용했다.
지식 IN은 왜/어떻게 성공했는가?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 보고, 지식IN이 최초인 줄 알았는데 (이는 인터넷 포털 기업 기준이고) 한겨래 신문사 디비딕 닷컴이 선두주자. 실제로 네이버는 진입 시 어려움 느낌.
2002년 9월 디비딕이 서비스 유료화를 단행했고, 이에 불만을 느낀 디비딕 핵심 이용자들이 네이버 지식iN으로 옮겨오기 시작했고, 2003년 3월 디비딕은 엠파스에 인수되어 리뉴얼 과정을 거치는 동안 지식iN은 폭발적으로 질문/답변 DB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엠파스에서 리뉴얼한 지식거래소(지식센터) 서비스가 오픈했을때 네이버 지식iN은 이미 질문/답변 DB 수가 200만개를 넘어서서 경쟁서비스 대비 DB 규모가 10배가 넘은 압도적인 상황이 되었고, 이에 따른 쏠림현상은 이후 네이버 지식iN은 시장장악력을 더욱 높이게 되었다.
근데 디비딕이 유료화하면서 + 인수되서 실행력이 늦춰지면서 기회가 생김
이 기회를 포착하고, 미친 실행력으로 질문/답변 DB 축적한 것이 네이버가 디비딕을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 글 참고
다시, 상황에 대한 기민한 판단과 빠른 실행력이 중요하다.
검색에 대한 집착과 지식iN을 통해서 압도적인 자체 컨텐츠 DB를 확보하게 된 네이버는 이제 이 멋진 재료들을 가지고 기가막히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 요리의 이름은 다름아닌 통합검색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네이버는 2001년 5월에 넥서치 시그마 라는 검색서비스 브랜드를 만들고, 국내 아니 세계 최초로 [통합검색]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지식iN과 검색에서의 해자를 바탕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 서비스가 바로 통합검색
이는 검색과 지식iN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선순환을 유도했고 지식iN을 쓰러 왔다가 네이버 검색을 이용하고, 네이버 검색을 쓰다가 정보를 지식iN 섹션에서 얻고 상황에 따라서 직접 질문을 올리거나 답변을 달변서 엄청난 네트워크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깨달음은 추후 통합검색 영역에 블로그, 카페 영역을 차례로 추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네이버는 각 영역들을 추가할때마다 해당 서비스를 분야 No.1으로 만들었고, 네이버 검색 점유율도 압도적인 수준으로 상승했고 70%를 지속적으로 넘어서는 상태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통합 검색의 성공 원인은, 지식iN의 압도적 점유율을 바탕으로 네트워크 이펙트가 발생했기 때문.
불과 1년전, 야후 다음에 비해 브랜드가 부족해 실패했던 네이버와는 다르다.
단 1년만에 지식iN이라는 1등 제품이 생겼고, 이를 활용할 검색이라는 해자를 백앤드단에서 잘 구축해났으며, 네트워크 이펙트로 카페,블로그 추가하며 검색의 패권을 잡아감.
최종적으로 네이버를 30조 짜리로 만든 근간은 검색광고이다. 검색광고는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마케팅 수단 중에서 최고의 성과를 나타낸다. 그 이유는 마케팅 관련된 다양한 기법과 상황들 가운데, 검색 행위만이 자발적으로 본인의 의도를 드러내고, 그 의도에 따라서 정해진 형식(사이트 제목 +설명)의 정보를 찾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검색결과 리스트는 위치에 따라 상업적 광고(Sponsored AD) 또는 정보 컨텐츠 이다. 통합검색 도입을 통해서 한국 이용자들의 검색 트래픽을 압도적으로 장악한 네이버는 이후 성과 좋은 검색광고가 TV광고를 주로 진행하는 매출액 많은 오프라인 기반 대형 광고주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소규모 상품/서비스 판매는 영세 상인들에게까지 소문이 났고, 한국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광고주(검색광고주 계정이 수십만개에 이른다)를 보유한 네이버는 검색광고 분야에서 매일, 매월, 매년 엄청난(연 조단위 매출과 수천억 단위 영업이익) 부가가치를 거두어 가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보면 구글과 페이스북도 비슷하다 하겠다.
오버추어가 만들고, 구글이 널리 퍼뜨린 검색 광고의 흐름. 이 흐름을 네이버가 그동안 구축한 해자를 바탕으로 만든 통합검색이라는 서비스로 한국에 가져왔다.
해자를 만들었으면, 그 해자를 돈으로 연결할 시기였는데, 검색 광고로 이를 아주 잘 해냄.
2006년으로 넘어와, 위에서 구축한 해자가 결국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 간략하게 보여주며 글을 마치겠다.
네이버는 사활을 걸고 지식검색에 집중했고, 그 결과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며 마침내 2003년 10월 부동의 검색 1위였던 야후 코리아를 제치고 검색시장 1위에 올랐다.
(현재 네이버는 한국 인터넷 검색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며 독점 체제를 구축, 인터넷 포털 기업 수익률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검색시장의 수위를 차지한 NHN은 거칠 것이 없었다. 이후 오픈한(2003년 7월) 블로그와 카페 등 커뮤니티 서비스도 검색 엔진과 연계한 뒤 연이어 "대박"을 기록하며 다음 카페와 사이월드의 아성을 위협한다. (현재 네이버는 블로그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인터넷 카페 시장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적인 측면에선 누구보다 판단이 정확하고 심지가 굳었다. 인터넷 사업의 핵심을 간파하고 NHN의 사업 방향을 항상 "승리하는 쪽"으로 이끌었다.
네이버와 이해진 회장의 과거 속에서 많은 힌트들을 찾았는데, 결국 중요한건 현실에 대한 기민한 판단과 빠른 실행력이 아닐까 싶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고, 엠파스로 인해 검색 해자마저 떨어질 위기에 있던 네이버가, 모든 기업들을 이기고 1등을 하리라 예상한 사람이 그 당시 있었을까?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해진 회장과 네이버도,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래 인터넷 기업은 이렇게 바뀌겠지, 포털/미디어보다 검색 광고 위주로 갈거니까 검색 엔진 강화에 더 치중해야해. 이를 위한 검색 관련 컨텐츠 DB 축적에 집중해야해. 지금 당장 출혈 경쟁으로 트래픽 유치하고 브랜드 가치 올리는건 장기적으로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없어.’
그저, 빠르게 변화하는 인터넷 시대에서 장기적인 관점을 유치한 채, 우리만의 경쟁력을만들기 위해 빠르게 실행하고 노력했을 뿐. 인터넷 사업의 핵심을 간파하고 NHN의 사업 방향을 항상 "승리하는 쪽"으로 이끈 이해진 회장과 네이버의 비결은 단순하게도 이런 빠른 실행이 아닐까?
기술의 파도가 오고, 많은 기업들이 이 파도에 올라타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다음 파도가 올 때까지 남아있는 기업은 손에 꼽는다. 미래 파도에서 끝까지 살아남고 해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언자처럼 미래를 바라보는 것보다 기민한 대처와 실행이 더더욱 중요함을 늘 잊지 말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